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등의 패배로 일본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자,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세력들이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가 장기 항일전을 준비하기로 결정하고, 1920년 12월 중·소 국경 부근인 밀산(密山)에서 독립군 세력을 하나로 통합한 연합부대이다.
배경
일본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남북 만주 전 지역, 특히 북간도에 위치한 독립군 부대는 중-소 국경 부근의 밀산 방향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항일 전쟁 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1920년 12월 북로군정서의 주도로 대한독립군, 대한신민회, 구춘선을 단장으로 하는 대한국민회, 혼춘의 대한국민회, 군정부, 의군부 대표, 효성단, 야단 그리고 대한정의군정사는 연해주로 건너가 장기간의 항일전쟁을 벌였다. 준비를 하기로 결심한 그들은 밀산에서 이 단체를 조직했다.
대한독립군단 휘하에 상급부대로 여단을 두고, 그 아래 3개 대대 9개 중대 27개 소대가 편성되어 있었으며, 총병력은 3,500여 명이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