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은 전한 황실의 외척 왕씨의 일원으로, 원제의 황후 효원황후의 비호 아래에서 권력을 장악하였다.
기원전 8년 대사마가 되었고 9세의 평제를 옹립한 후 안한공(安漢公)이 되었다. 그러나 평제를 죽인 다음 유자 영을 세워 스스로 섭정이 되어 가황제(假皇帝)를 자칭하였으며, 8년에는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황제에 즉위한다.
왕망은 복고주의(復古主義)를 내세워 《주례》(周禮) 등 유교 경전을 근거로 하는 개혁 정치를 단행하였다. 즉 고전에 입각하여 삼공과 구경 이하의 관직을 제정하고 정전법을 모범으로 하는 한전(限田)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노비 매매를 금지하였으며, 국가 권력에 의해서 물가의 균형책과 전매제를 강화하여 상업을 통제하였고 또한 화폐를 개주(改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 정책은 실정에 맞지 않아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흉노를 비롯한 대외 정책도 실패했기 때문에 안팎으로 불안과 동요가 고조되었다.
잦은 재해(재위 2·5·11년의 황하 범람)와 호족 세력이 반발하여 각지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그 결과 적미(赤眉)·녹림(綠林) 등의 농민 반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또 지방의 여러 호족도 이에 호응하여 봉기하여 왕조 개창 15년 만에 적미군의 침공으로 왕망은 죽임을 당하고 신 왕조는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