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8년 고토바 천황의 양위로 4세의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사실상 재위 기간 내내 고토바 상황에 의한 인세이(院政)가 이어졌다.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당시까지 계속되고 있던 막부와 조정의 긴장관계가 풀어질 것을 염려한 고토바 상황의 요구로 1210년 동생인 준토쿠 천황에 양위한 후 퇴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교토의 조정에서는 외할아버지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가 조정(만도코로; 政所)의 장관인 벳토(別當)의 관직을 맡아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가마쿠라에서는 1199년 막부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죽은 후 사실상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를 위시한 호조 가문에 의한 고케닌(御家人) 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퇴위 후인 1221년 고토바 상황에 의한 가마쿠라 토벌 시도가 실패하여 막부의 반격을 받은 조큐의 난이 발생하여 고토바 상황은 오키 섬, 준토쿠 상황은 사도(佐渡)에 유배되는 사건이 발행했다. 쓰치미카도 상황은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고토바인)가 유배되었는데 아들이 교토에 남아 있는 것은 차마 견딜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도 유배를 청해, 시코쿠의 도사 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시코쿠 동쪽으로 위치상 교토와는 조금 더 가까운 아와로 거처를 다시 옮기게 되었데, 가마쿠라 막부는 고토바인이나 준토쿠 상황에 대한 처우와는 달리 아와의 슈고(守護) 오가사와라 나가쓰네(小笠原長経)에 명하여 쓰치미카도 상황의 거처로 쓸 별궁을 따로 짓게 하는 등 후한 대접을 보였다.
1231년 10월 숨을 거두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기 직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화장되어 가네가하라(金ヶ原)에 묻혔다. 현재 교토부나가오카쿄시에 있는 가네가하라노 미사사기(金原陵)가 그곳이며, 도쿠시마현나루토시에는 유해를 화장한 곳에 조성한 화장총(火葬塚)이 있다.
불교 종파인 일련종(日蓮宗)의 개조인 니치렌은 쓰치미카도 천황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으나 정설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