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개시 시각은 평일은 18:00(일부 구장은 18:15). 토·일요일, 공휴일은 주최 구장에 따라 다르지만 13:00 또는 14:00(여름철에는 햇빛으로 인해 야간경기는 같지만 주간경기는 14시나 15시 이후 시간대의 개시가 많다)에 개시한다. 2009년에는 18:30에 6경기가 개시, 17:00에 4경기가 개시했다. 2010년에는 35년 만에 오키나와현나하시의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나하에서 요코하마 대 야쿠르트의 2연전이 19:00에 개시했다. 그리고 “황혼의 주간경기” 또는 “준 야간경기”로 17:00에 개시하는 6경기가 추가되었다.
가을의 포스트시즌의 경기 개시시각은 센트럴 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평일과 토·일요일 모두 18:00, 퍼시픽 리그의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평일에 18:00, 토·일요일에 13:00에 개시한다. 일본 시리즈는 센트럴 리그 주최 경기는 18:00, 퍼시픽 리그 주최 경기는 18:15 또는 18:30에 개시한다.
2004년에 발생한 "프로 야구 재편 문제"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현재의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의 탄생 영향이 일어나면서 전국에 '독립 리그 구상' 열풍이 불어왔다. 그 후에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처럼 실현된 리그가 있는 반면에 자금문제 같은 문제들로 실현되지 못한 리그들도 있다.
리그 소속 선수는 지금까지 사회인, 아마추어 등의 대우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2009년에 일본 야구 연맹의 선수 등록 규약 개정으로 NPB와 같이 프로선수로서 대우받게되었지만. NPB의 드래프트 지명대상 대우는 이전과 같다.
독립리그 선수들도 NPB와 같이 프로계약으로 구단으로부터 연봉을 받고 있지만, 액수는 NPB와 비교시 적다. 그래서 오프 시즌에 부업을 인정하는 리그도 있다.
2004년의 창설 최초의 명칭은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였다. 시코쿠 지방 4개 현에서 각 1개 구단이 가입해 2005년 시즌을 개최했다. 2007년 12월 후쿠오카 나가사키의 규슈지방의 2개 구단이 신규가입 함에 따라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라는 명칭으로 개칭했다.따라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6개 구단으로 공식경기를 치렀다. 후쿠오카 레드 워블러스는 경영난으로 2009년부터 리그 참가를 중지해서 2010년에 5개 구단으로 개최했고 후쿠오카의 사무소는 남아있어서 "준가입 구단"으로 2011년 시즌의 복귀를 목표한다고 했으나 2010년 10월 익년 시즌 복귀를 보류한다고 발표한 바있다. 그리고 나가사키 세인트는 2010년 시즌으로 해산이 정해졌다. 2011년 시즌부터 중지된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에서 혼슈의 미에 스리 애로스가 가입했다. 이에 따라 리그 명칭 변경이 다시 협의되어,2011년 1월 27일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로 이름을 변경했다.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ベースボール・チャレンジ・リーグ, 약칭 BC 리그)는 이하 6개 구단에 의해 구성된다.
2006년 창설 당시 명칭은 "호쿠신에쓰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北信越ベースボール・チャレンジ・リーグ)"에서 니가타・시나노・토야마・이시카와의 4개 구단이 가입해서 2007년부터 시즌을 개최했다. 2007년 11월 군마・후쿠이의 2개 구단이 가입함에 따라 현재의 명칭으로 개칭했다. 2008년 시즌부터 6개 구단(2지구제)로 공식경기를 치르고 있다.
2009년 시즌부터 개최했다. 오사카 엑스포 세븐티스(大阪エキスポセブンティーズ)와 미에 스리 에로우스가 가입할 예정이었지만, 모두 독자 리그를 결성할 방침으로 변경했다. 원년에 참가한 오사카 골드 빌리케인즈(大阪ゴールドビリケーンズ)는 2009년 시즌 종료 후 탈퇴해서 2010년 시즌부터 한국 선수들이 만든 간코쿠 해치(韓国ヘチ, 구 코리아 해치)가 가입했다. 2011년부터는 오사카 호크스 드림(大阪ホークスドリーム)이 가입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2010년 시즌부터 개최했다. "미에 스리 에로우스"는 당초에 간사이 독립 리그에 가입할 예정이었지만, 간사이 독립 리그의 기존구단과의 선수급여 수준이나 리그운영 방침과 관련해서 의견과 이념이 다르다고 여겨서 2009년 10월 간사이 독립 리그에서 탈퇴하고 독자 리그를 결성하게 되었다. 10월 13일에 새 리그의 명칭을 "재팬 퓨처 리그"로 발표했고 동년 12월 1일에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로 개칭했다. 그리고 "오사카 골든 빌리케인즈"도 2009년 10월에 간사이 독립 리그에서 탈퇴해서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에 참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와 교류전을 추가해서 리그를 펼쳤다. 하지만 오사카 골든 빌리케인즈 선수의 불상사로 인해 스폰서가 철회하는 등 경영문제가 생겨서 2010년 9월에 2011년 리그를 쉬기로 결정했다.
NPB에서 현역을 은퇴한 선수들로 구성된 리그로,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プロ野球マスターズリーグ)는 이하 5개 구단으로 구성된다.
2001년(2001-2002년 시즌)부터 NPB에서 은퇴한 선수들로 개최되었다. 주로 프로 야구 정규 시즌이 열리지 않는 동절기에 리그 전을 개최하고 있었지만, 2008-2009년 시즌의 리그전은 열리지 않았고(이후 올스타전만 개최). 2010-2011년 시즌부터의 리그전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삿포로 앰비셔스(札幌アンビシャス)
도쿄 드림스(東京ドリームス)
나고야 80D'sers(名古屋80D'sers)
오사카 로만스(大阪ロマンズ)
후쿠오카 돈타크스(福岡ドンタクズ)
역사
1871년9월 30일 - 요코하마의 거주 중인 외국인과 미군함 “콜로라도 호”의 승무원 간 야구 경기를 개최, 이 경기가 일본 최초의 야구 경기임.
1872년 무렵 - 제1번 중학(第一番中学, 현재의 도쿄 대학)의 외국인 교사인 호레이스 윌슨에 의해 학생들 사이에 야구가 퍼진다.
2013년 - 2011년부터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전력 부족 대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3시간 30분 경기 종료 규칙을 폐지하고 시간 제한을 연장 12회로 규정했다.
現 시대 프로 야구와 관련된 사건들
프로 야구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긴 시간 동안 나가시마 시게오와 오 사다하루 등 국민적 인기를 얻은 선수들의 등장도 있었으며, 일본의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받으면서 경기당 관객 동원수를 늘려 왔다.
1990년대에 들어와 자유 계약 선수제도의 도입이나 드래프트 제도의 변경으로 인해 기존 선수들의 연봉과 신인 선수들의 연봉이 해마다 증가하며 억 단위까지 상승해서 연봉 지급금이 구단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연봉의 증가에 관해서는 예전에 일본 프로 야구에 치명타를 준 검은 안개 사건과 같은 가짜 승부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굳이 문제화 할 수는 없다.
메이저 리그로 선수 이적이 자유롭게 되면서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인기와 관심을 많이 받게 되었다. 반면에 메이저 리그로 선수 유출이 잇따르고 있는 것에 대해 ‘프로 야구계의 공동화(空洞化 : 속이 텅 비게 되는 현상)’, ‘일본 프로 야구의 메이저 리그 2군화’를 걱정하는 소리도 많다.
퍼시픽 리그 구단은 전국 TV 중계 방송 수가 센트럴 리그 구단의 중계방송 수에 비해 크게 적기 때문에 사업상 많이 어렵다. 그래서 센트럴 리그 구단에게 현행 양대 리그제에서 단일 리그제로 바꾸는 것과 교류전 개최를 주장해 왔었지만 지금까지 센트럴 리그의 협력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에 퍼시픽 리그의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는 팀 명명권의 매각을 원했지만 타 구단의 반대로 좌절해서 마침내 같은 퍼시픽 리그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을 교섭하기까지 도달했었다. 이 사건은 일찍이 긴테쓰가 소비자 금융대기업인 "아콤(ACOM)"의 회사 로고를 유니폼에 넣었을 때와, 국제 미디어 기업에서 미국 메이저 리그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매수 할 만큼의 능력이 있는 호주의 뉴스 코퍼레이션이 긴테쓰를 매수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외국 자본 기업이나 소비자 금융업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요미우리신문 그룹 본사의 와타나베 쓰네오 회장이 강경하게 반대한 것도 있었으며 긴키 닛폰 철도의 경영난도 일어나는 등 자력 재건을 단념했기 때문에 라고 말해진다. 또, 팬의 지리적 범위가 겹쳐지는 센트럴 리그의 한신 타이거스에게 편향 하는 오사카의 대중 매체의 보도도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진다(합병 교섭 사건에 대해서는 일본의 프로 야구 재편 문제를 참조).
2004년에 이시게 히로미치가 입안해서 2005년에 발족한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현·시코쿠 규슈 아일랜드 리그)는 기존의 일본의 프로 야구 리그와는 달리 지역 밀착해서 야구의 보급·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직 되었다. 시코쿠는 일본에서도 뛰어날 만큼 야구 경기가 번성한 지역이며, 또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 짓는 사람'으로서 야구 경기의 소개·보급에 노력한 마사오카 시키(正岡 子規)는 에히메현마쓰야마시 출신이다(덧붙여 말하면 마사오카 시키가 "Baseball"을 야구라고 번역했다는 설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말은 잘못된 것으로서, 본명인 「升(노보루)」에 야구라고 하는 문자를 「노 보루(の ぼーる)」라고 멋부려 부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야구’라고 번역한 것은 주만 가나에이다.
이전부터 각 구단과 일본 프로 야구 선수회 등이 해왔던 소년 야구 교실에 참여해서 고교 야구선수에게 프로 야구 선수가 심포지엄 형식으로 기술 지도를 하는 기획이 시작됐다.
해외 원정 공식경기
옛날에는 일본 운동 협회와 덴슈 야구단이 1923년에 경성 (현 서울)에서 프로 구단끼리의 해외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프로 야구 리그 개시 후, 첫 공식경기로서 해외 원정 개최는 1940년에 벌인 만주 리그전이다. 만주(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동북부지방)에서 9팀이 참여해서 원정길을 떠났다, 7~8월에 걸친 하계 리그 경기(사전의 연습 경기와 오픈전을 포함해서)를 개최했다. 다음 1941년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중일 전쟁의 판국이 악화되어서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