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SK Wyverns)는 대한민국의 야구단이었다. 인천광역시를 연고지로 했으며, SSG가 인수하며 SSG 랜더스로 변경되었다.
역사
창단
SK 와이번스의 창단은 기존 쌍방울 레이더스의 인수 형식이 아닌, 새로 팀을 창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IMF 직격탄을 맞고 법정 관리 중이던 쌍방울은 야구단 매각을 통해 최대한 많은 금액을 받아낼 계획이었다. 이에 7개 외국기업과 2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협상을 벌였고 외국기업을 상대로 약 2,000만 달러, 국내기업에게는 약 200억 원의 인수 대금을 요구했다. 당시 한창 프로야구 참여를 타진하던 SK 입장에서는 굳이 그 많은 돈을 쌍방울에 지불하고 야구팀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KBO와 직접 협상을 통해 연고지 이전, 선수보강 등 여러 부면에서 혜택을 얻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결국 회생에 실패한 쌍방울은 2000년 1월 7일 ‘금일 자로 (주)쌍방울은 KBO의 쌍방울 레이더스 법정 퇴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내용의 팩스 한 통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회적 여망을 받아들여 야구단 창단을 검토하겠다‘는 손길승 SK 회장의 발언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2월 1일이었다.
이로 인해 SK는 쌍방울과 전혀 무관하게 보이게 만들어버렸으며 쌍방울의 기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신인 지명권이 인계됐고 1999년 말 김준환 쌍방울 감독 대행이 쌍방울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과정에서[1] 코치로 부임했지만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새로 창단된 해당 구단에서 코칭스태프를 역임한 함학수김성현박철우 코치와 강병철 감독이 SK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 팀 수석코치를 맡은 김준환 코치가 2000년 말 '쌍방울 색 지우기' 프로젝트에 따라[2] 팀을 떠나야 했으며 이들 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1999년 말 김준환 쌍방울 감독 대행이 쌍방울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과정에서 코치로 부임했으나[3] 팀이 2000년 1월 해체된 후 새로 창단된 해당 구단에서 코칭스태프를 역임한 이건열 코치, 쌍방울 시절부터 몸담아 온 박상열 김만후 코치가 해고됐고 이외에도 쌍방울에서 그대로 받은 선수들 위주로 대대적인 구조 정리가 단행됐지만 쌍방울이 해당 구단(SK)에 선수들을 넘기려면 전지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쌍방울은 2000년2월 7일부터 3월 7일까지 하와이로 전지훈련을 떠났으며[4]최태원김원형성영재조원우 등 당시 쌍방울의 주축 선수들이 여전히 선수협 고수의사를 굽히지 않았던 터라 애를 먹었고 김호양용모 박진석 김기덕장재중손차훈김원형조원우심성보 등이[5] 선수협에서 탈퇴하여 최태원김광현성영재박재용이 당시 선수협에 잔류했는데[6]김호성영재는 2000년 시즌 중 해태로 이적했고 장재중은 2001년 LG로 이적했으며 박진석 심성보김광현박재용 등이 2000년 시즌 후 방출되어 은퇴했다.
초창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00년에는 초창기 선수단의 주축이었던 쌍방울 선수들에 대한 신분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7] 시범경기에 불참했으며 선수협 파동 때문에 두산(OB 포함)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8]강병규가 같은 해 3월 23일 해당 구단(SK)으로 현금 트레이드됐고 같은 날 강병규 외에도 지역연고(인천) 출신인 권명철김충민장광호와 인천 출신이 아니었던 김태석김종헌송재익을[9] 데려왔으며 시즌 전 선수협 문제로 전준호와 갈등을 빚은 데다 코칭스태프와의 불화설 뿐 아니라 부상 때문에 개막전부터 출전을 하지 못한 프랜차이즈(인천) 출신 김경기를 현대에서 2020년 7월 현금 2억 5,000만원에 트레이드로 데려왔다[10].
2001년에 인천 용현동 SK 인천 물류 센터 위치에 연습 구장인 '와이번스 드림파크'를 개소했으며, 2002년에 홈구장을 문학야구장으로 이전하였다. 2003년에 창단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준우승을 하였다. 2005년에는 3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일명 'SK 와이번스 왕조' 시대
2007년에는 1위로 시즌을 마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창단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8년에는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2009년에는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준우승을 하였다. 2010년에는 1위로 시즌을 마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다. 2011년에는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위 롯데를 꺾었으나 삼성에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5년에는 구장이름을 문학야구장에서 인천SK행복드림구장으로 바꿨으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하였으나 제1차전에서 결정적 실책으로 탈락하였다. 2018년 시즌에는 2위로 시즌을 마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였고 2019년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2020년에는 심각한 부진으로 9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1월 26일, 신세계그룹이 구단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SK텔레콤이 보유한 구단 지분 100%(1,000억)와 부동산(352.8억) 등을 1,352억 8,000만원에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하였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로 유지하며, 구단 인원 및 선수단의 고용은 모두 승계한다. 2월중에 본계약을 마치고, 3월 6일에 SSG 랜더스로 개편되었다.[11]
2000년 4월 5일 (창단) ~ 2000년 6월 18일 : 창단 유니폼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입었던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의 줄무늬가 똑같았다. 와이번스의 영문자인 Wyverns가 파란색으로 흘려져 쓰여저 있었고 붉은색의 SK 로고가 왼쪽 가슴에 박혀 있었다.[1] 원정 유니폼의 상의를 모두 파란색으로 만들었다.[2] 모자 또한 같은 색으로 만들었으며 와이번스를 상징하는 영문자 W는 흰색이었다.
2000년 ~ 2001년 : 이전 유니폼에서 줄무늬를 삭제하고 가운데에 파란색 두 줄만 넣었다. 가슴에서 SK로고를 삭제하고 왼쪽 어깨로 이동한 모습이다.[3] 원정 유니폼은 파란색을 채택하고 있고 흰색 두 줄이 들어가 있는 형태이다.[4]
2002년 : 유니폼을 대폭 수정해서 홈 유니폼에는 목부분을 V넥으로 만들고 목 주변에 한줄짜리 선을 넣었다. 흰색 바탕의 한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큰 붉은색 SK로고가 위치하고 있다. [5] 원정 유니폼은 파란색에 흰색 SK로고가 있어 큰 차이는 없다. 모자에서는 원정 유니폼의 종전에 W로고를 없애고 흰색으로 SK라고 찍었다. 이 당시 모자와 유니폼의 디자인이 너무 유치하고, SK 주유소의 주유원 복장과 비슷하다는 평이 나와 주유소 유니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6]
2003년 : 기존 유니폼의 디자인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모자는 2001년에 쓰는 'W' 모자로 환원되었다.
2004년 ~ 2005년 : 2000년 ~ 2001년에 착용하던 유니폼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단지 전년도에 쓰던 SK 로고보다 많이 축소된 푸른색 SK 로고가 좌측상단에 자리잡는다.
2006년 - SK그룹의 CI가 변경됨에 따라 기존의 파란색을 버리고 빨강색을 쓰게 되었다. 모자는 검은색으로 바뀌었으며 W로고가 주황색으로 변하였다.[7]
2007년 - 흰색 홈 유니폼의 소매 아랫부분에 빨간색 줄, 빨간색 원정 유니폼의 소매 아랫부분에 검은색 줄이 추가되었다.
2008년 - 모자에 2007년 우승을 기념하는 패치가 붙어있다.
2009년 - 모자에 2008년 우승을 기념하는 패치가 붙어있다.
2010년 - 모자에 창단 10주년 기념 로고 패치가 붙어있다. 유니폼 좌측소매에 Let's Go! Green! 패치가 추가되었다.
2011년 - 모자에 2010년 우승을 기념하는 패치가 붙어 있으며, 유니폼 좌측소매에 한국 프로 야구 출범 30주년 기념 로고 패치가 붙어있다.
2014년 - 유니폼 상의에 있는 SK그룹의 행복날개가 삭제되었으며 유니폼 좌측소매의 패치를 잘!생겼다 LTE-A 패치로 교체하여 부착하였으나, 2014년 6월 광고 주제 변경에 의해 광대역 LTE-A×3 패치로 교체하여 부착하였다.
2015년 - 9년만에 유니폼 디자인을 전면 수정하였다. 홈과 원정 모두 팀 로고를 강조하고자 유니폼의 선이 삭제되었으며, 홈 유니폼에 경우 흰색으로 제작되었으며 'One Team'을 강조하기 위하여 유니폼 뒷면엔 등번호만 표시하게 된다. 원정은 붉은색과 어울리는 웜그레이 컬러를 채택하였다. 홈과 원정 모두 모자는 붉은색을 사용한다.
2019년 - 디자인을 수정해 홈 유니폼도 뒤에 이름을 표시한다 소매에는 2018년 우승을 기념하는 패치가 붙어있다.
2020년 - 소매에 2018년 우승을 기념하는패치가 사라지고 로고에 흘려쓰는 'wyverns' 문구가 뭉글뭉글 하고 각진 문구로 수정되었다. 모자는 홈,원정은 빨간색 모자를 쓰고, 인천군 유니폼, 레드 유니폼은 검은색 모자를 사용한다.
역대 얼트 유니폼
2002년꿈★의 유니폼 : 당시 미국메이저 리그의 구단들이 전신 팀 유니폼 다시 입기 운동을 자주 하면서, 이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인천 연고팀 중 가장 최초의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1982년 창단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고자 했다. 그러나 삼미 슈퍼스타즈의 법통을 이어받은 현대 유니콘스가 강력하게 반대하여, 삼미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개조(별 무늬의 'S'를 'SK'로 바꾸고, '슈퍼스타즈' 문구를 'WYVERNS'로 바꿈)한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팬들은 별도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1983년 유니폼을 제작하여 이 당시 야구장에서 착용하고 응원을 펼쳤다. 이 유니폼을 입은 경기는 8월 24일, 8월 25일 문학 두산전이었다.
2003년주말 유니폼 (승리의 유니폼) : 이른바 '주유소 유니폼'에 대한 팬들의 반대가 극심해지자, 구단 측이 팬들로부터 '주말경기 유니폼 디자인 공모'를 받아 새로운 유니폼을 만드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유니폼 디자인 공모 결과 웹 디자이너 김도현 씨의 작품이 선정되어, 선수들이 이 유니폼을 착용했다. 이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가운데 파란색 두 줄이 들어갔으며, 양 소매 부분을 당시 구단의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처리했다. 가슴에는 구단의 연고지인 인천의 영문 표기 'Incheon'과 SK그룹 로고가 표기되었다. 하의는 기존 유니폼과 같은 옷을 입었다. 당시 이 유니폼을 입은 경기는 9월 13일, 9월 14일 문학 삼성전이었다. 특히 이 유니폼은 승리의 유니폼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이는 당시 이 유니폼을 입은 경기에서 매우 높은 승률을 거뒀기 때문이다. 특히 9월 13일 경기에서는 0:4로 뒤지고 있다가 9회말 조원우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5:4로 승리를 거뒀는데, 이것이 승리의 유니폼이라는 애칭이 붙은 시초다. SK 구단은 페넌트레이스 종료 때까지 홈 경기에서 이 유니폼을 착용했고, 결국 페넌트레이스 4위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05년인천 유니폼 : 한국야구 100주년과 인천야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얼트 유니폼이다. 2003년 승리의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나, 가슴에 표기된 'Incheon SK'의 글씨체가 변경되었다. 'Incheon' 문구 위에는 인천광역시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무늬가 첨가되었다. 이 유니폼은 그동안 단발성 이벤트 유니폼이 아닌 상시 착용 유니폼으로 제작되었다. 매 홈 경기 중 두 번째 경기(수요일, 토요일 경기)마다 착용했다. 이 유니폼을 입은 날에도 성적이 좋았고, 일반 팬들에게 이 유니폼을 판매하여 높은 인기를 얻었다.
2005년, 2014년, 2015년인천군 유니폼 : 한국야구 100주년과 인천야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얼트 유니폼이다. 1947년 4대도시 대항 전국 야구대회에서 압도적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인천 대표 야구팀 인천군(仁川軍) 팀의 유니폼을 그대로 복각하여 만든 유니폼이다. 원래의 유니폼보다 소매가 길고 흰색이 아닌 베이지색을 띄는 유니폼으로 가슴에는 인천의 영문 표기 'INCHUN'이 새겨져있다. 이 유니폼은 전형적인 1940년대 유니폼 스타일로 제작됐고, 일반 팬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이 유니폼은 2005년6월 11일, 6월 12일 문학 롯데전에서 착용했으며, 2014년10월 7일NC 다이노스전을 레전드 데이를 정해 인천군 유니폼을 다시 착용하였다. 2015년에는 인천군 유니폼을 새롭게 리메이크 하여 미색 바탕에 연고지인 인천(Incheon)을 SK 로고와 함께 가슴에 새겼다. 리메이크된 인천군 유니폼은 2015년 시즌부터 일요일 홈경기에 착용한다.
2007년사랑의 유니폼 : SK 와이번스가 지역 사회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광역시지부와 협약을 맺고 만든 유니폼이다. 2003년, 2005년에 제작된 '인천 유니폼'과 형식은 거의 유사하나, 상징색깔이 빨강색으로 바뀐 점과 'Incheon'의 글씨체가 또 바뀐 것이 차이점이다. 또한 이웃사랑 취지 고취를 위해 우측 가슴에 사랑의 열매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유니폼의 뒷면에는 선수의 본명 대신에 팬사랑이라고 일괄적으로 새겨져 있다. 토요일 홈 경기마다 입은 이 유니폼을 통해 기금을 적립하고 이 기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2010년 ~ 2020년그린 유니폼 : 2009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발맞춰,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여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SK 와이번스와 인천광역시, 에너지관리공단이 상호 체결한 '그린 스포츠 협약'에 따라 제작된 특별 유니폼이다. 또한 일반 섬유를 사용하지 않고, 페트병등을 재활용한 특수섬유를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당초 공개됐던 유니폼의 전체적인 바탕은 초록색이었으나,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반발 때문에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3월 21일 2010 팬 페스트 때 공개된 그린 유니폼 확정판은 초록색이 아닌 흰색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소매 부분에만 연두색이 들어가 있다. 앞면에는 팀명 대신 'Let's go Green'이라는 녹색 스포츠 캐치프레이즈가 새겨져 있고, 선수들의 이름과 등번호는 녹색으로 표기된다. 이 유니폼은 2010년 페넌트레이스 중 특별히 '그린 데이'로 지정된 8경기에서 선수들이 착용하였으며 그린데이 첫 경기는 5월 28일 문학 롯데전이다.[12] 2010년에 제정된 특별 유니폼이었지만, 2010년 시즌 이후에도 이 유니폼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는 경기가 있다.
2012년100만 관중 기념 유니폼 : 2012년 팀 창단 최초이자 인천 연고팀으로는 처음으로 단일 시즌 100만 관중 돌파를 기념하여 착용한 유니폼이다. 9월 15일 문학 KIA전에서 100 관중 돌파 후, 9월 16일 이 유니폼을 착용했으며, 디자인은 어깨, 옆구리 부분에 빨간색으로 라인을 맞췄으며 우흉부 아래에는 우승을 3번 하였다는 뜻에서 별 3개와 좌흉부 아래에는 'ONE Million' 이라고 새겼다.
2014년패밀리 유니폼 : 패밀리 데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었으며, 야구장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라는 뜻을 담은 이벤트이다. 이후에도 매월 정례행사로 패밀리 데이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했으며, 이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유니폼이다. 유니폼의 디자인은 팔, 어깨 부분은 빨간색으로 어깨, 옆구리 부분은 검은색으로 라인을 맞췄으며, 우흉부 아래에 ‘I LOVE FAMILY’ 패치를 부착하였다. 이 유니폼을 착용하여 경기를 진행한 첫 경기는 7월 26일 문학 넥센전이다.
마스코트
2007년3월 27일, SK 와이번스 팬 페스트 행사에서 비룡을 형상화 한 와우(Wow)와 팬을 형성화 한 팬토(Fanto)가 공개되었고. 이후 2009년 와우의 디자인이 리뉴얼되었고, 암컷 비룡 캐릭터 윙키(Winky)도 선을 보였다.2012년 새로운 마스코트인 윙고가 선을 보였고, 2016년 새로운 마스코트인 아테네, 와울을 선보였다.
와우는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찬 비룡을 형상화한 것으로 폭발적인 파워와 스피드를 자랑한다. 와우는 SK 와이번스의 모든 팬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친근하고 귀엽게 표현했다. 와우의 네이밍은 놀랄 만한 상황이나 능력을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감탄사로서 언제나 팬들을 위해 무한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와우의 디자인이 리뉴얼되었고, 암컷 비룡 캐릭터도 선을 보였다. 한 때 '용순이'또는'용녀'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나, 팬들을 상대로 공식 명칭을 공모한 결과 윙키라는 이름을 얻었다. 윙키는 와우와 생김새는 비슷하나 피부의 색깔이 진한 핑크색을 띄고 있다.
팬토는 팬과 함께 하는 와이번스라는 컨셉을 가지고 팬 자체를 와이번스의 캐릭터로 형상화하고 'Fan Together'의 약자인 '팬토'로 명명한 것이다. 현재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윙고는 2012년부터 새로이 투입된 마스코트이며, 홈 경기에서 볼 수 있는 마스코트이다. 다만, 비룡을 형상화하지는 않았다.
SK창단 시작부터 열정적인 팬들이 서포터를 조직하여
큰 규모로 서포팅을 시작하였다.
창단 첫 서포터 회장 여용구씨와 총무 정미영 고문 한광현씨등이 초대,2대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SK 와이번스가
인천 지역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SK 와이번스의 팀 응원가로는 레이지본의 노래인 《불꽃투혼! SK!》와 창단 당시부터 불리고 있는 《불타는 패기》가 사용되고 있다.
팬 서비스 및 주요 행사
와이번스는 지역 밀착 마케팅의 일환으로 대학생 대상 마케팅논문 공모를 통해 스포츠(Sports)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스포테인먼트라는 개념을 도입,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게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 그중 가장 먼저 시행된 것은 김성근 감독의 와이번스 제 3대 취임식이었는데 팬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300여명의 팬들이 참가한 상태에서 취임식을 진행하였고 모든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다. 이 외에 여러 이벤트와 흥밋거리를 만들어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게 했다. 2006시즌 관중 동원수인 326,361명 대비 2007시즌에는 646,576명을 동원해 98%의 관중증가율을 보였다. 이어서 2008시즌에는 계속되는 구단의 스포테인먼트 노력과 우수한 팀 성적에 힘입어 2007시즌보다 늘어난 754,247명의 관중을 동원하였으며 2009시즌에는 그보다 더 늘어난 841,270명(경기당 평균 12,556명)의 관중을 동원하였다.
2006년10월 15일 김성근, 제 3회 SK 와이번스 감독 취임식 - 팬들과 함께하는 취임식이라는 개념으로 취임식 전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다.
2007년1월 12일 2007 캐치프레이즈 Fan First! Happy Baseball 선정. 이 캐치프레이즈는 2009년까지 사용되었다.
2008년3월 20일스포테인먼트 2.0 선언 - 경쟁상대는 에버랜드, 롯데월드라고 말하면서 문학 구장을 파크개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화했다. 와이번스 랜드를 3루까지 확대하고 파워 퍼프 걸 놀이터를 설치했다. 먹을 거리에서는 베니건스, 스테프 핫도그 등 인기 외식업체와 계약, 야구장을 찾은 팬들의 식사 선택 폭을 넓혔고 특히 문학 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를 개발,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2009년3월 29일스포테인먼트 2.0+ - '야구장으로 소풍가자'라는 2009시즌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를 발표. 메인통로인 1루측 2층 통로에 인조잔디를 심어 산책로처럼 꾸미고 경기가 없는 날에도 지역주민들이 찾아와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였으며 '패밀리 존', '바비큐 존', '프렌들리 존' 등의 '테마 존'의 개념을 도입하여 야구장을 찾는 재미를 더욱 늘리도록 하였다.
2009년11월 9일그린 스포테인먼트 - 2009년부터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발맞추어, 깨끗한 환경을 보전하고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SK 와이번스와 인천광역시, 에너지관리공단이 상호 체결한 협약으로 생긴 스포테인먼트 전략이다. 2010년 시즌 중 전반기 3경기, 후반기 3경기를 골라 '그린 데이'로 지정하고, 이날 선수단 전원은 특별 제작된 녹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출전한다. 아울러, 문학야구장 좌측 외야 상단에 잔디밭 관중석을 조성하여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문학야구장 중앙지정석 입구의 공터 일부를 유소년용 미니 야구장으로 개조하여 어린이들이 야구를 체험할 수 있게끔 할 예정이다. 또한, 기존의 바비큐 존이 태양광 전기를 활용하여 삼겹살이나 바비큐를 직접 요리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여기에 문학야구장에 500대 규모의 자전거 주차대를 만들어, 자전거를 타고 야구장을 찾는 관중에게 할인 혜택을 주며, 문학야구장의 외등과 주차장 조명 등을 고효율 LED 조명기기로 교체하여 에너지 절약에 기여할 방침이다.[13]
와이번스 걸
와이번스 걸은 구단 행사 및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여성 모델을 일컫는다. 2007년부터 도입되었으며 첫 모델은 이현지이다. 2008년이현지와 1년 재계약을 했고 이현지가 입는 원피스형 유니폼을 이현지 유니폼으로 이름 짓고 여성팬들을 대상으로 판매했다.
2009년3월이현지 후임으로 탤런트 이채영을 제 2대 와이번스 걸로 선정했다. 이채영은 2008년여름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한 것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던로 알려졌다.
2012년3월 20일 제 4대 와이번스 걸로 걸그룹 클리나가 선정되었다. 구성원 4명중 3명이 연고지인 인천광역시 출신이기 때문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와이번스 도그(Dog) '미르'
대한민국 프로야구 최초의 볼도그이다.“공 전달” 및 “홈런타자 하이파이브”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골든 리트리버종의 개이다. 2008년 구단은 와이번스 걸에 대응하는 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메일로 이름을 공개 모집. 추려진 5개의 이름을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 투표를 진행하여 미르로 이름이 지어졌다. 같은 해 5월 5일 어린이날 홈 경기때 최초로 팬 앞에 선보였으며 이후 홈 경기 때마다 팬들 앞에 나서고 있다.
SK 와이번스의 초대 감독은 강병철이다. 그리고 2003 시즌부터 조범현이 2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는 4시즌을 치르며 두 차례 PS에 진출하였으나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다.
2007 시즌부터는 김성근이 3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SK 와이번스 창단 이래 첫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두 차례 더 우승을 일궈냈다. 5시즌 동안 네 차례 PS 진출, 세 차례 우승을 거뒀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프런트와의 불화 끝에 불명예스러운 경질을 당하고, 그간 김성근을 보좌하던 수석 코치 겸 퓨처스 리그 감독이었던 이만수가 감독 대행부터 시작하여 4대 감독까지 맡게 되었다. 정식으로 부임한 2012 시즌에는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2013 ~ 2014 두 시즌은 PS에 진출하지 못한다.
이만수 감독은 3시즌 반가량의 감독 생활을 마무리하였고 라오스로 떠나 야구를 전파하였다. 그리고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5대 감독으로 김용희가 부임하였다.
2016 시즌을 6위로 마친 후 김용희 감독이 물러나고 구단 최초로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8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8년만의 우승을 일군 트레이 힐만 감독은 그 시즌을 끝으로 개인사정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후임으로 염경엽 단장을 제7대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염경엽 감독 체제에서 2019 시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나 타격 부진과 내야수 김성현의 실책으로 포스트시즌에 탈락하였고, 2020 시즌 진행 도중 건강 악화로 박경완 수석코치에게 감독 권한을 위임하였다. 염경엽 감독은 결국 정규시즌 종료 즈음에 정식 사임하였다. 정규시즌 종료 직후 팀의 레전드 선수 출신인 김원형 당시 두산 베어스 투수코치가 정식으로 제8대 감독에 선임되었다.
시즌 1 호평과 함께 팬들의 많은 성원에 따라 시즌2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시즌 1과는 달리 외주 제작이고, 팬들로부터 시즌 1보다 못하다는 혹평을 많이 받았다. 2009년4월 6일부터 10월 30일까지 방송하였다. 초창기에는 매주 월요일 23시에 방송하였으나 금요일 23시~24시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