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92년 그룹 '박진영과 신세대'로 데뷔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1994년 내놓은 앨범 《Blue City》를 통해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로 솔로 데뷔하여 가수로서 성공하였다. 대표곡으로는 《날 떠나지마》, 《엘리베이터》, 《그녀는 예뻤다》, 《Honey》, 《난 여자가 있는데》, 《니가 사는 그 집》등이 있다. 1996년 JYP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후 god, 비, 별, 원더걸스, 2AM, 2PM, 미쓰에이, 15&, GOT7, DAY6, 트와이스, 스트레이 키즈, ITZY, NIZIU, Xdinary Heroes, NMIXX 등의 가수를 키워내거나 프로듀싱하였다.
생애
데뷔
1994년 내놓은 앨범 《Blue City》에서 타이틀곡인 《날 떠나지마》를 통해 솔로로 데뷔하여 가수로서 성공했다. 〈날 떠나지마〉가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1994년 모 언론사와의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후 꿈은 '일반적인 샐러리맨'이다"라고 이야기하였고, 기존 관습에 벗어난 자유주의자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1999년에 발간된 그의 자서전인 《미안해》를 통해 자신의 자유주의 사상과 견해를 수필 형식으로 이야기하였다.
가수로서는 이색적인 이슈를 몰고 다녔는데 '나의 노래는 마이크 타이슨의 주먹보다 강하다'라는 멘트를 하거나 안무 의상을 비닐바지[2]로 입고 나오는 등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01년까지 꾸준히 음반을 내며 <엘리베이터>, <Honey>, <썸머 징글벨>, <Kiss me>, <Swing Baby>, <난 여자가 있는데> 등 히트곡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2001년 정규 6집 <Game> 을 통해 자신의 가수 생활 7년을 정리하였으며 이후 프로듀싱에 집중하기 위해 가수로서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5년간은 프로듀싱에만 집중하다가 2007년 7집 <Back in stage>의 타이틀 곡 <니가 사는 그 집>으로 가수에 복귀하였고 현재까지 음반을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진영의 가수 경영 방식이 삼성, 애플의 사례와 유사하다고 분석한 기사도 있다.[4]
걸그룹의 경우 프로듀싱한 그룹 모두 대한민국의 대표 걸그룹으로 승승장구하며 성공했는데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 모두 대한민국의 정상급 걸그룹이 되었다.
2019년 2월 걸그룹 ITZY를 제작하였고 ITZY는 대한민국 걸그룹 최단기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하며 2019년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았다.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 소장 영입 무산
2010년 1월 25일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산하에 신설할 ‘청년 연구소(가칭)’의 소장직에 박진영을 영입하려 하였으나 빡빡한 공연 일정 등을 감안해 그 생각을 접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생각은 민주당의 박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젊은 연령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민참여당에 대항하기 위하여 내놓았던 것인데, 박효석 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민주당에 젊은 피 수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청년 연구소 소장직을 제의받았던 박진영은 민주당 박상천 의원(김대중 정부의 법무부장관) 이모의 외손자로, 5촌 관계이기도 하다.[5]
서윤정과의 이혼
1993년 박진영은 서윤정과 만났고 교제를 했으나 서윤정 가족들이 연예인 남편은 안된다며 반대해 박진영은 은퇴를 선언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던 중 1999년 극비리에 결혼했다. 그러나 2009년 이혼했다.[6] 2009년 3월 27일 JYP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글을 통해 "나는 20살 때 만난 내 첫사랑과 지난 16년이란 시간을 함께 지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함께하며 열렬히 사랑했지만 몇 년 전부터 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몇 년 간의 고민과 방황 끝에 우린 결국 헤어지기로 했다."며 직접 이혼 사실을 알렸다.[7]
미국 진출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한국에서 23번째 1위를 하고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박진영은 미국 진출을 계획했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들은 박진영의 무모한 미국진출에 반대했고 1년 안에 빌보드 10위권 진입 못하면 귀국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회삿돈도 쓰지 못하게 해 모두 박진영 개인 재산으로 투자해야만 했고 지인의 집에 머물며 지냈다. 이전까지 아시아 사람들이 미국에 진출해 성공한 바가 없었고 일본의 유명 작곡가들도 2번의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온 유명한 작곡가라며 홍보했지만 흑인들은 배끼기식 음악을 했다는 선입견을 갖고 접근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동양인 느낌이 나는 이름 PARK보다 현지인 느낌이 나도록 JYP라는 이니셜을 사용했다. 자신이 만든 음악 CD를 20장씩 만들어서 배낭에 넣어 매일같이 음반사에 돌아다니며 홍보했고 작전은 성공했다. 11개월 동안 음반사 안내원에게 집요하게 홍보했고 안내원은 동료직원에게 건네면서 드디어 곡을 팔았다. 인기는 계속 얻었고 2004년 Mase의 음반 《Welcome Back》에 수록된 곡 〈The Love You Need〉는 빌보드 앨범차트 4위를 기록했다.[8] 이를 들은 윌 스미스 관계자는 박진영에게 전화를 해와 곡을 사고싶다는 전화를 해왔고 1500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렇게 윌 스미스의 음반 《Lost and Found》에 실린 곡 〈I Wish I Made That〉은 빌보드 앨범차트 6위까지 올랐다.[9] 또다른 미국 진출작으로 알려진 Cassie의 〈When your body is talking〉의 경우는 앨범에 정식 수록되지 않았다.[3]
미국에서는 겸손한 사람보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 박진영은 옷차림에 특별히 신경쓰고 지인의 좋은 차를 빌려서 업무에 사용하기도 했다.
박진영은 미국에서 유명 프로듀서 릴존과 공동으로 Min(민)을, 아웃캐스트와 함께 J Lim(임정희)를, 알 켈리와 함께 G.Soul을 데뷔시키려 했으나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10] 하지만 원더걸스는 미국 진출 4개월만인 2009년 10월 빌보드 역사상 대한민국 가수 최초로 '핫 100'차트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박진영은 섹스에 대한 파격적인 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섹스는 게임이다"라는 발언인데 박진영은 이러한 발언을 근거로 자신을 문란한 사람으로 몰아넣는 것에 대해서 항변한다. 연인끼리에만 해당되는 말로써 즐기자는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2] 박진영이 서윤정과 이혼하자 그 당일부로 일각에서는 이런 박진영을 비꼬기 위해 박진영에게 Game Over 또는 Insert Coin이라고 불렀다.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박진영은 2007년 2월 16일 하버드대 케네디 정치대학원에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강의를 한 적도 있다.[13]
바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또는 한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박진영은 한국인이 반드시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진 않고 있다. 한국인이라도 흑인 음악을 할 수 있고 그것들로 해외 진출도 할 수 있다"란 말을 그가 한 것이다.[14]
박진영은 파격적인 의상으로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비닐의상이 있다. 또한 2003년 8월 10일 청와대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에서 망사 옷을 입고 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15]
한편 그는 "미국의 음악가들 중 악보를 보지 못하고 화성같은 기본적인 음악 지식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음악공부를 별로 하지 못했다고 해서 좋은 음악을 못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감각이고 음악은 음학(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16]
그리고 비에 대해서는 "가수가 아닌 어떤 일을 했어도 성공했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비의 집에 갔었는데 자신이 잔소리를 해놓은 것을 모두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것을 보며 놀랐다고 한다.[17]
또한 소미에 대해서는 "정말 재능은 뛰어난데 겉절이 같아서(아직 익지 않아서) 참 안타까운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트와이스로 선발하지 않았다.[18]
박진영은 케이팝스타라는 오디션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공기반 소리반"이라는 노래철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였다. 방송에서 참가자가 노래를 부를 때 박진영의 표정을 보면 참가자가 잘했는데 못했는지 알 수 있다.
박진영은 경영을 그만두고 가수활동과 작곡만 하면서 무대에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다.[19]
박진영의 안목이 항상 영광만을 안겨 준 것은 아니다. 박지윤의 뛰어난 가창력을 무시한 채 외모만 집중시켰는데 박지윤이 박진영의 손에서 벗어나자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원더걸스의 경우 역시 국내차트에서 1위를 했다고 해서 미국 가요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미국 가요계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고 초라하게 귀국했는데 이때 국내가요계 1위의 자리마저 이미 소녀시대에게 내준 이후였다. 게다가 싸이에 대해 혹평했는데 싸이는 되려 강남스타일로 원더걸스가 해보지 못한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으며 박진영이 K팝스타 1에서 혹평한 유주는 여자친구의 메인보컬로 크게 성장하고 가요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트와이스에 선발하지 않고 탈락시킨 소미가 《PRODUCE 101》에서 100명의 경쟁자들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론적으로 박진영이 나쁘다고 평가한 대부분이 되려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출처 필요].
2020년부터 자신의 개신교 신앙을 공표했으며, 자신이 직접 성경 강의를 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첫열매들〉을 운영하고 있다.[20][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