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韓國放送公社, 영어: Korean Broadcasting System, KBS)는 대한민국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사이다. 1927년 경성방송국으로 창립되었고, 1935년에는 조선방송협회를 결성하여 전국에 지역방송국을 설립하였다. 1947년에 서울중앙방송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같은 해 약칭을 KBS로 정하였다. 1961년에 TV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하였고, 1973년에는 공사 창립으로 국영에서 공영으로 전환되었다. 1980년에 동양방송과 동아방송 등 민간방송국을 인수합병하였으며, 컬러TV 송출을 시작하였고 KBS 2TV를 개국하였다. 1983년에 방송된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역사
국영 방송 시절
KBS는 Korean Broadcasting System의 약칭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다. KBS는 1927년 경성방송국(호출 부호 JODK)으로 라디오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1935년 기존의 JODK는 경성중앙방송국으로 개칭하고 조선방송협회를 결성, 1936년부터 부산방송국(JBAK)을 시작으로 평양(JBBK), 청진(JBCK), 이리(JBFK), 함흥(JBDK), 대구(JBGK), 광주(JBHK), 대전(JBIK), 원산(JBJK), 해주(JBKK), 신의주(JBLK), 춘천(JBMK), 마산(JBOK), 목포(JBNK), 성진(JBPK), 청주(JBQK), 강릉(JBRK)에 지역방송국 체제를 갖추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의 뿌리이기도 하다. 합천군 영상테마파크에 JODK 사옥을 재현해놓은듯한 건물이 있다. 이후 1947년 국영방송 서울중앙방송으로 재출범했다.
1947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호출부호HL가 인정했고 국영 방송인 대한방송협회에 의해 KBS 약칭으로 정해졌다.[1] 1961년 12월 24일에는 시험방송을 실시했고, 1961년 12월 31일 텔레비전 방송을 개국한 뒤, 1962년 1월 15일에 정식 방송하였다. 한국방송공사의 창립 이전에는 명칭[2]으로 사용하였다. 1963년 1월 1일에 수신료와 시청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도 개시하였다. 1963년 1월 1일부터 1969년 4월 30일까지 6년동안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했다. 1969년 4월 30일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마지막 방송을 마쳤고, 1969년 5월 1일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했고 아침시간에는 교육방송을 했다.
공영 방송이 되다
1973년에는 방송국의 운영처가 국영 방송에서 공영 방송으로 바뀜에 따라 지금의 한국방송공사가 창립되었다.[3][4] 1972년에 여의도 현 사옥을 계획, 1976년 준공하였다.[5][6]1979년 군쿠데타의 발생 당일에는 반란군 측에서 군용 트럭 한 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장악에 성공하였으며, 반란군 측에 최초의 점령지가 되었다.
1980년대
1980년에는 언론통폐합 지침에 따라 동양방송(서울본사 및 부산지국)과 동아방송 등의 민간 방송국을 인수 합병하였고,[7] 12월 1일부터는 텔레비전 컬러 방송의 허가가 내려지면서 컬러 방송을 개시하였다. 1980년 12월 1일에는 언론통폐합으로 인해서 KBS 제2FM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했다. 1980년 12월 22일에는 KBS 2TV의 채널은 컬러방송을 개시했고, 1981년 2월 2일에 KBS 3TV를 개국했다. 1981년 3월 7일부터 KBS 1TV와 KBS 제1라디오, KBS 제1FM 및 KBS 2TV와 KBS 제2라디오랑 같이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도 처음 개시 및 재개를 하게 되었다.
1982년 1월 25일에는 KBS 2TV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형식 및 변경이 되었고, KBS 1TV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은 KBS 2TV와 다르게 스포츠프로그램 및 실황중계와 영화 등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줄이다가 4월에 평일오전시간대에 블록광고를 편성하게 되었고 광고시간이 늘어났다. 라디오 채널도 KBS 제1라디오와 KBS 제1FM 및 KBS 제2라디오도 텔레비전채널과 같이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실시를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 · 중반에는 농민, 종교단체들의 "KBS 시청료 거부 운동" 확산을 일으켰지만, 1983년에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138일간 방영하게 되었다. 1985년 음성다중방송을 첫 실시하였다. 이후 한국방송공사는 국내 대회의 주관방송사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1985년5월 1일KBS 1TV 채널은 술광고를 폐지했고 오후 시간대는 20:00 ~ 22:30분(2시간 30분)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줄였다.[8]
1986년에 서울 아시안 게임 및 KBS 1TV의 채널은
1986년 7월에 평일 오후 블록광고(20:30~20:35)를 폐지했다. 1988년에는 릴 테이프 입출력 방식의 대형 컴퓨터, 위성 송출 장비, 텔레텍스트, 크로마키 스튜디오 등이 외국 취재진들을 위해서 완비된 최첨단 올림픽 프레스 센터 건물의 개관과 함께 서울 올림픽을 주관 방송하게 되었다. KBS 1TV의 채널은 1988년 ~ 1989년에는 오전에 뉴스를 시작할 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방영했다.[9]
1990년대
1990년에는 KBS 방송강령을 처음 제정하였으며, 한국교육개발원 소속의 채널이 교육방송(이하 EBS)으로 분리되었다. KBS 1TV의 채널은 1990년 3월 2일에 평일 블록광고를 폐지했다. 1990년 KBS 1TV의 채널은 광고를 스포츠, 실황중계, 영화 등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보냈다.[10] 1990년 ~ 1994년까지 스포츠와 실황중계 및 영화 등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판매를 했다. 1990년 12월 27일에는 KBS 3TV가 폐국했지만 KBS 3TV가 EBS로 바뀌게 되었다.
1994년 7월 23일에는 KBS 1TV 채널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 결정을 했다.[11]1994년 9월 30일에 KBS 1TV와 KBS 제1라디오 및 KBS 제1FM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마지막으로 보냈다. 1994년 10월 1일에는 가을개편에 수신료의 징수 제도를 한국전력공사를 통한 위탁 징수로 개선하였다. 동시에 KBS 1TV와 KBS 제1라디오, KBS 제1FM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하면서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은 편성하지 않게 되었다.[12]KBS 2TV와 KBS 제2라디오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남게 되었지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시간 및 확대하였다.[13] KBS는 TV수신료와 광고 수입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공영성 강화를 위해서 KBS 1TV와 KBS 제1라디오, KBS 제1FM은 1994년 10월 1일부터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금지되었고,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하지 않고 있다.[14]
1995년[15]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인터넷 방송을 처음 개시하였고, 1997년에는 제34차 아시아 태평양 방송연맹(ABU) 서울총회를 주관 개최하였다. 제15대 대통령 선거일에서는 개표 방송과 전혀 관련이 없는 드라마, 교양 프로그램 등의 평일 방송에 화면 하단의 자막에서, 주유소 주유기처럼 득표수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프리즘 젬'이라는 방송 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2000년대
2000년 1월 1일에는 KBS 3라디오 사랑의 소리방송을 개국하고, 같은해 7월 1일에는 KBS 2라디오 FM방송을 개시하였다. 이듬해 2001년에는 지상파 디지털 TV 본방송을 개시하였다. 21년만에 다시 2001년12월 10일에 라디오 채널인 KBS 2FM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개시 및 허용을 하였다.
2002년 1월 1일에 KBS 2FM의 라디오 채널에게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재개를 하였다. 2002년에는 국제대회 주관방송사로서 FIFA 한·일 월드컵 공식방송과 부산 아시안게임 주관방송 실시하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일에는 첨단 선거 예측 시스템인 '디시전K'를 활용하여 선거일에 일몰 시간도 아닌 이른 초저녁 시간대인 선거 방송의 최초 시작 시점에서 예상 당선자를 발표하였다.
2003년 국제위성방송인 KBS 월드를 개국하고, KBS 윤리강령을 제정하였다. 라디오 부문에서는 2라디오와 2FM의 애칭을 해피FM, 쿨FM으로 명명하였다. 2004년에는 팀제를 시행하고 지역국 체계도 9총국 9지역국으로 조정하였다. 2005년에는 APEC 2005 KOREA 주관 방송을 실시하였으며 KBS 지상파 DMB 채널인 U-KBS를 개국하였다.
2006년에는 MMS(멀티모드서비스)를 시험방송하고 2007년에는 지상파 DMB를 전국으로 확대 방송하였다. 또한 같은해 세계 공영방송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1FM의 애칭을 클래식FM으로 명명하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당선인이 거주하던 집 마당에 당선이 확정된 시점부터 개인 휴대용 중화기를 무장한 현역 군인이 들어와 경계를 서는 모습이 방송되어 유명하였다.
2010년대
2010년에는 G20 서울 정상회의의 주관 방송을 실시하였으며, 울릉도·독도의 DMB 방송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2011년에는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의 주관방송을 맡은 동시에 3D 중계방송을 실시하였으며, 개국 50주년을 맞았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여수 엑스포의 주관방송을 실시했다.
2013년에는 KBS 월드 개국 10주년, 공사창립 40주년을 맞이하였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주관방송하였으며, 같은해 열린 ITU 전권회의도 주관방송하였다. 또한 해외 대상 24시간방송 서비스인 KBS WORLD 24가 출범하였다. 2015년 10월 9일에는 지난 1983년에 방송된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017년에는 한국방송 개시 90주년을 맞았다. 2018년 4월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정치와 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며, 이 같은 취재제작 자율성 확보 노력은 2019년 11월 KBS 방송 편성규약 개정으로 결실을 보았다.
2020년대
2021년 7월 19일에는 KBS 다채널 방송이 개국되었다[16]. 9-2 채널은 7월 19일부터 9월 5일까지 올림픽 전용 채널로 활용, 올림픽 끝난 뒤 9월 6일부터 KBS NEWS D로 전환. 9-3 채널은 KBS 1라디오의 보이는 라디오와 독도 실시간 라이브로 활용. 7-2 채널은 9월 30일까지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8월 31일에는 9-2 채널을 24시간 재난전문채널 신설 계획을 발표되었다[17].
1974년4월 착공하여 1976년11월 1일 준공된 본관건물은 지하1층, 지상7층 연건평 34,000평의 규모로 준공되었다. TV스튜디오 7개, 라디오스튜디오 19개등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다. 현재 라디오센터, 시사교양, 외주제작파트의 사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1985년12월 착공되어 1988년6월 완공된 신관 건물은, 서울 올림픽의 국제종합방송센터(IBC)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건축 되었다. 서울 올림픽 폐막 이후에는 방송 제작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지하2층, 지상9층 규모로, 4개의 TV스튜디오, 2천석 규모의 공개홀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보도본부를 비롯한, 예능본부, 드라마본부, 시사교양본부, 외주제작파트 등이 사용하고 있다.
1991년9월 7일 개관한 KBS홀은 1,660석의 규모의 10,890m2면적의 종합 공연장으로 가변식 무대와 오케스트라 피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오페라나 발레와 뮤지컬 등의 무대 작품 공연도 열리고 있으며 방송사 주최의 대규모 특집 프로그램, 시상식 등에도 이용되고 있다.
2000년 준공된 수원센터는 경기도 수원시팔달구인계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작·미술·편의 시설과 오픈세트장, 특수촬영장 및 관련 부대시설로 구성된 종합영상제작단지이므로, KBS 1TV의 경기 및 인천 지역의 보도 업무를 전담하는 지역 방송국인 KBS경인방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폰트는 1984년 8월 1일에 전문 디자인 기업인 디자인포커스에서 제작과정하여 1984년 10월 29일부터 사용되었다. 1984년 10월 새로운 폰트와 동시에 원형과 태극문양과 사람의 눈 모양으로 세계와 한국과 전파를 표현하였다.[21] 6개의 선으로 된 로고와 4개의 선으로 된 로고가 있으며, 1985년 11월 4일 통합로고가 추인되었다.
↑오인환 장관은 1994년10월 1일에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하기로 했는데 수신료징수제도개선 및 수신료를 2,500원으로 동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광고와 수신료를 30:70에서 50:50으로 변경했다.
↑KBS 1TV의 채널에서 KBS 뉴스 9에는 이윤성 전 기자겸 방송인이 1994년 10월 1일에 KBS 새로운 출발을 알려드리려고 수신료징수제도가 바뀌었다고 했다.KBS 1TV의 채널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전면 폐지했다고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없는 채널과 방송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KBS 1TV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폐지 뉴스를 출발한다고 임병걸기자에게 보고했다. 임병걸기자는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하려고 수신료를 전기료와 함께 2,500원에 추가해서 받게 된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임병걸기자는 수신료징수제도개선을 242만가구를 늘리겠다고 했다. KBS 1TV의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로 인해서 위탁징수까지 추가 되었다.
↑케이블 TV방송국을 개국을 1995년에 하려고 위성방송을 허용을 받으면서 1994년 10월 1일부터 KBS 1TV의 채널과 KBS 제1라디오 및 KBS 제1FM은 수신료징수제로개선으로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했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폐지로 인해서 수신료면제가구를 저소득층을 136만가구와 난시청지역을 106만가구 및 242만가구를 늘렸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는 광고없이 프로그램을 끝날 수 있다.
↑KBS 1TV의 채널은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폐지를 한 이후에는 광고없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에도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없이 끝나기도 했다.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하지 않는 이유는 수신료 및 시청료로 운영을 하고 있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익광고방송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