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입단하였다.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했으며, 1군 경기에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해는 2003년(110.2이닝), 가장 많이 출전한 해는 2009년(57경기)이었다. 2008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한 경기에도 등판하지 못했지만 2009년에는 시즌 초부터 중간 계투로 큰 역할을 하였다. 무릎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로 1년을 쉰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구위를 보여줬고, 또한 구속도 2007년보다 증가한, 150 km/h에 육박하는 공을 던졌는데, 이는 재활 기간 동안 꾸준하게 턱걸이를 한 덕분이라고 했다.[2]2009년롯데 자이언츠의 중간계투진에서 임경완과 함께 필승조의 주축이 됐으며,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0년 초반에는 부진과 무릎 부상의 재발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시즌 후 고원준을 상대로 박정준과 넥센 히어로즈에 트레이드됐다.
시즌 초 4월 ~ 5월에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 4월 28일에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시즌 첫 승과 동시에 팀의 4연승에 기여했다.[3]5월 12일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후 컨디션 난조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후 1군에 복귀한 5월 29일에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2승을 거뒀다.[4] 그러나 그 후 등판할 때마다 실점했다. 특히 6월 7일 ~ 6월 9일SK 와이번스와의 3연전에서 3경기 모두 등판해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으며, 이후 다시 2군으로 강등됐다. 이후 8월 3일에야 1군 경기에 등판했다. 시즌 52.1이닝동안 단 1개의 피홈런만 허용했는데, 그 홈런은 이전 팀 동료인 강민호에게 허용한 홈런이었다.
2012 시즌
시즌 초 우완 불펜으로써 안정적으로 잘 막아냈다. 그러나 6월부터 구위가 떨어지고 제구가 흔들리면서 부진하다가, 팀이 4강 경쟁에서 멀어진 9월에 들어서고 나서야 박성훈, 한현희와 필승조로 활약했다. 시즌 후 FA신청을 하여 11월 13일에 2년 총액 5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2013 시즌
2009년 이후로 개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본인 통산 첫 시즌 두 자릿수 홀드 달성 및 5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6월에 8연패를 할 당시 이보근과 함께 팀의 추락을 저지했고 가을에는 필승조, 롱 릴리프로 활약했다.
2014 시즌
가끔 등판해 잘 막을 때는 잘 막아내나 그렇지 못할 때는 평균자책점이 치솟는 모습을 보였다. 6월 4일롯데와의 2군 경기 이후로 등판하지 못했고, 7월 중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2015 시즌
1군 경기에 거의 등판하지 못했다. 2015년 시즌 단 2경기에 등판해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6 시즌
15경기에 등판해 3패,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은퇴를 선언했다.[5]
2009년 시즌 후 구단과의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만족할만한 제시액을 받지 못한 그는 2010년1월 11일에 연봉조정신청을 했다. 2009년 시즌 3,600만원을 받은 그는 2009년 시즌 활약 여부에 따른 2010년 시즌의 자신의 연봉을 구단측에 제시했는데 그 금액은 9,000만원이었다. 당시 구단은 6,600만원을 제시했고 이 격차는 다음 협상에서 소폭 줄어들었다. 다음 협상에서 그는 8,000만원을 제시했으나 구단측은 7,200만원을 제시했다.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로 연봉조정신청에 들어갔으며, KBO 연봉조정신청위원회는 구단의 손을 들어주며 그의 2010년 연봉은 7,200만원이 됐다.[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