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철도는 대한민국에서 운영하는 철도 노선, 시스템, 차량 등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철도는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9월 18일에 개통된 경인선[1]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요 간선 노선은 이후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침탈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일본에 점령당하며 군사·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겨났다. 이후 주권을 찾은 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지만 극빈한 후진국이어서, 유엔·미국 등에서 차관을 들여와 일부 간선을 건설하고 철도 차량을 수입했다.
1960년대~1970년대 산업화 시대까지만 해도 철도는 자동차·항공운송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객·화물수송에서의 지위는 확고했지만, 1980년대 들어 시설의 노후화나 서비스의 부재 등으로 심각한 재정 악화와 서비스의 퇴보를 보였다. 그래서 지속적인 노후 시설 대체와 서비스 개선 등으로 모습을 일신하고 있고, 도로수송의 적체나 항공수송의 고운임에 비해 저운임·신속·대량수송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도시철도를 제외한 일반철도는 2004년 말까지 철도청을 통한 국영 체제였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도 한국철도공사에 의한 공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이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나타나 2014년12월에 수서평택고속선을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주식회사 SR 운영하는 소위 "경쟁 체제"가 도입되었다. 경쟁 체제 찬성론자는 이것이 경영합리화 작업의 일종이며 차후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 이용하기에 편해질 것이라 보지만, 하지만 반대론자는 국가의 기간망인 철도를 여러 기업에서 운영한다면 시설물 구입이나 직원 채용 등에서 예산을 추가로 사용하게 되므로 되려 낭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철도가 건설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철도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이시기에 도시철도로서 서울전차도 개통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민간 회사에 운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건설하고자 하였다. 경인선의 부설을 최초로 추진하여 미국과 합작하였으나 일본이 이를 인수하여 1897년 개통했다. 경부선은 일제가 인수하여 1901년 착공하였다. 경원선은 서울-원산-경흥(웅기)의 선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하여 한국인이 부설권을 획득하였다.[2]하지만 자금이 없어 실패했고 일본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공사를 진행했다가 일제 강점기에 완공했다. 호남선은 경목선으로 계획되어 프랑스 회사가 요구하였다가 한국인이 설치한 회사에 권리를 주었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취소되고 일제 강점기에 개통했다.[3] 경의선은 프랑스 회사가 부설권을 얻었다가 한국인에게 넘어갔다가 일본이 러일 전쟁때 부설하여 완공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이상의 완성된 간선 이외에도 대륙 침략과 북부지역의 개발을 위하여 평원선, 함경선(경원선의 연장으로 건설) 등의 철도를 건설하였므며 경부선을 보완하는 종관철도로 중앙선을 건설하고 동해선의 건설을 계획하여 일부 구간이 개통되었다.. 민간 자본의 철도도 건설되어 충북선, 개천선, 토해선, 장항선, 경춘선, 마산선, 수인선, 경동선, 수려선등을 건설하였다. 일부 사유 철도는 간선 철도로 활용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매수하여 개량하였다. 협궤로 지어진 사철로 표준궤로 개궤된 노선은 도문선 (현재의 함북선중 삼봉 이북 구간)이나 경동선, 전북선등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철도는 철의 조달을 위하여 철거하여 금강산선이나 경북선의 점촌역 이동 구간등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군사적으로 필요한 노선은 공사를 계속 진행하였지만 동해선이나 영동선의 영주-철암구간등은 일제의 패망으로 공사가 중단되게 되었다.
해방 이후 석탄을 철도로 운송하여 자급자족할 목적으로 각 지역의 탄광과 연결되는 삼척탄광선, 영월탄광선, 단양탄광선을 건설하고자 하였다.[4] 세 노선은 각각 영암선·영월선·단양선으로 명칭이 바뀌어 착공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영주-철암 구간의 영암선과 제천-영월 구간의 영월선만 1955년에 개통되었다. 또한 영월-함백 구간의 함백선을 1957년에 개통해 영월선을 통합시켰다. 이후 철도의 미싱 링크를 연결하는 공사를 착수하여 1958년에 충북선의 충주-봉양 구간을 개통했다.
1961년에 능곡-가능 간 능의선이 개통되었다. 1963년5월에는 영암선·철암선·삼척선·동해북부선이 영동선으로 통합되었고, 통리-심포리 간의 인클라인이 폐지되고 우회 선로가 개설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능의선 가능-의정부 간이 연장되었다. 1966년1월에는 예미-고한 간 정선선이 개통되었고, 점촌-예천 간 경북선이 복구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북선의 예천-영주 구간이 개통되며 경북선이 완공되었다. 1967년에는 태백선 증산-정선 구간이 개통되었다. 1968년에는 경전선 진주-순천 구간이 개통되며 경전선이 완공되었다. 1969년에는 문경선 진남-문경 구간이 개통되었다. 1975년에는 태백선의 고한-백산 구간과 영동선의 철암-북평 구간이 개통되며, 산업선 전기철도가 완성되었다.
1980년에는 김포선과 경춘선의 성동-성북 구간이 폐지되는 한편으로, 충북선 전 구간이 복선화되었다. 경부선과 함께 간선의 축을 이루는 호남선은 점차 복선화되었는데, 1985년에는 익산-정주 구간에서, 1987년에는 정주-장성 구간에서, 1988년에는 장성-송정리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1986년에는 경원선의 성북-의정부 구간이 복선 전철화되었고, 1991년에는 경부선의 영등포-구로 구간이 3복선화되었다. 1995년에는 수인선이 폐지되면서, 협궤 철도가 사라졌다.
여객과 물자의 수송이 경부축에 집중되어서, 기존의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국도만으로는 그 양을 모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경부선을 2복선화하거나 경부고속국도의 차선을 대폭 확장하는 방안을 고려하다가, 경부고속선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992년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지하철 및 광역전철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도는 한국철도공사가 운행한다. 이 철도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한 전국 각지를 연결하고 있다. 한편 1967년에는 일반 여객용 증기기관차가, 1995년에는 협궤 철도가 사라졌고, 경부선과 호남선의 과다한 여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2004년·2015년에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가 각각 개통되었다. 또한 2007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여객 영업을 하는 사설 철도인 인천국제공항철도가 개통되었는데, 이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는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사유화되었다. 한편 간선 철도망과 간선 고속도로망의 길이는 약 3000km로 거의 같은데, 이는 다른 세계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철도 인프라 과소 현상이라는 지적이 철도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7]
대구에는 1·2·3호선이, 대전과 광주에는 각각 1호선이 운영되고 있다. 각 노선은 도시에서 세운 공기업이 운영하고 있으며 각 도시 철도 노선은 현재에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특별시에서는 새로이 건설되는 노선을 경량 전철로 지을 계획이며, 부산광역시와 대전광역시, 경기도에서는 노면 전차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화물
화물열차로는 시멘트나 컨테이너 등을 수송하며, 때로 공화차라 불리는 회송되는 빈 화차도 운행한다. 한편 우편물이나 곡물 등을 수송하는 화물열차는 분류상 여객열차의 범주에 들어간다.
2019년 기준으로 운송수단별 국내화물운송분담률은 도로가 92.6%, 해운이 6%, 철도가 1.4%, 항공이 0%이다. 철도는 네 종류의 운송 수단 가운데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관광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철도를 이용한 관광 문화는 그닥 발달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부 관광열차가 운행하였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운행이 중단되었다.
1894년7월 30일(음력 6월 28일) 갑오개혁 관제공포 이후 조선 정부는, 내각 아래 공무아문에 철도국을 설치하였다. 철도국에는 참의 1명과 주사 2명이 임명되어 공식적으로 철도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어서 8월 6일(음력 7월 6일) 농상공부 직제를 개편하여 철도국을 농상공부에 이관하고, 철도사(司)를 설치하여 감독 1명과 사장 1명, 기사 2명, 주사 2명, 기수 5명 등 11명을 두었다. 아울러 8월 21일에는 다시 농상공부의 직제를 개편하고 철도사를 철도국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세칙은 농상공부대신이 부령으로 정하도록 하였다. 조선 정부는 국유철도를 직접 설치하지 않고, 부설권을 민간에게 부여한 뒤에 관리 감독하는 정부 기관으로 철도국을 설립했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의 초기 철도와도 유사한 방식이다.
열차는 구조상 자동차와 같이 급커브를 돌 수 없으며, 보통의 커브는 곡선 반경이 250m 이상으로 되어 있다. 또한, 차량의 원심력에 균형이 맞도록 외측의 레일을 높이 하고 있으며, 이것을 캔트(cant)라고 부른다. 곡선 통과시에는 원심력이 작용하여 전복의 위험이 있으므로 곡선 선로에는 제한 속도가 걸려 있다. 대한민국의 철도에서는 곡선에서의 열차 최고속도를 선로 조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철도 동호인의 활동은 이루어지고 있다. 각자 활동하던 동호인들은 PC통신과 인터넷 상의 동호회가 발달하면서 집단으로 모이게 되었다.[14] 이들은 민간 단체 차원에서 활동하거나 때로는 한국철도공사 측과 연계하여 행사를 열기도 하는데, 특히 2012년7월에는 문화역서울 284에서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15] 2010년부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상업 잡지인 《레일러》가 발행되고 있다.